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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ka

오사카 사케바 추천: 사케바 시키(日本酒BAR四季, SAKE BAR SHIKI) 방문기

도톤부리에서 사진 찍고 돌아다니며 먹다 보니 '한 잔 할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교토에서 마스야 사케텐의 좋은 기억 덕분에 사케가 생각났다. 그래서 도톤부리의 수많은 칵테일바와 수제맥주집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케를 제대로 마셔보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사케바 시키(日本酒BAR四季, SAKE BAR SHIKI)다.

진열ㅈㅇ에 사케병이 가득한 사케바


도톤부리에서 8분, 생각보다 가까운 2차 스폿

SHIKI는 도톤부리 에비스바시(에바스 다리)에서 걸어서 8분 정도 거리다. 관광객이 몰려 있는 도톤부리 한복판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된다. 덕분에 관광지 소음은 한 겹 빠진 곳이다. 빌딩 2층에 자리 잡은 곳이다.

 

영업시간은 대체로 18:00~24:00(라스트오더 23:30)이며 좌석 수가 적어 붐비는 날엔 만석일 수 있으니 미리 전화로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사장님은 영어로 소통가능).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손님이 없어 자리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첫인상은 사케바보다 칵테일바에 가깝다

2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부는 어둡고 차분하다. 그리고 사케바라기보다는 칵테일바 같은 분위기다. 조명이 어두운 덕분에 대화가 더 또렷하게 들릴 것 같다. 앞서 말했듯 공간이 넓지 않아 혼술이나 소규모 방문에 적합하다.

 

사케를 모르면 바텐더에게

솔직히 사케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바텐더의 역량이 정말 중요하다. SHIKI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곳에서는 사케 메뉴판이 아예 없다. 취향을 이야기하면 그에 맞춰 술을 추천해 주는 방식이다. 달큼한 계열, 드라이 계열, 산미 있는 타입, 라이트/진한 맛처럼 내 취향을 말하기만 하면 된다.

 

이게 우리에겐 편했다. 메뉴판을 보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SHIKI에서 마신 사케 다섯 잔

SHIKI에서 마신 사케는 총 다섯 종. 이 다섯 사케는 성격이 다 달랐다. 잔이 쌓일수록 내 취향도 같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바 테이블 위에 사케 3병이 올려져 있다. 니혼토, 료칸, 스즈키라고 쓰여 있다.
니혼토(왼쪽)와 료칸(가운데) 그리고 스즈키

 

첫 잔은 니혼토(日本刀, Katana). 시즈오카 하마다 주조의 초카라구치라고 한다. 단맛을 기대할 틈도 없이 직선으로 치고 들어온다. 이름처럼 뒷맛이 날카롭게 끊긴다. 한정주 스티커까지 붙어 있으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다음은 료칸(両関, Ryokan). 이 술은 부드러웠다. 니혼토가 입안을 바짝 말려놓는 타입이라면 료칸은 쌀의 감칠맛으로 둥글게 감싸면서 편하게 넘어간다. 강한 자극 없이도 술을 마셨다는 만족은 확실했다.

 

스즈키(鈴, Suzuki) 골드 준마이다이긴죠는 가장 익숙한 브랜드다. 화사한 향이 올라오는데 과하지 않고 목 넘김이 깨끗하게 정리된다. 사케를 잘 몰라도 '아, 좋은 술은 이런 느낌이구나'가 바로 이해되는 스타일.

 

테이블 위에 사케병 2개와 사케를 따라놓은 잔 2개가 올려져 있다.
텐메이(왼쪽)와 소텐텐

 

텐메이(天明)는 생주란다. 완전 투명한 느낌이 아니라 미세하게 탁도가 있어 향이 더 생생하게 튀는 것 같다. 뒤쪽에 마신 사케인데도 입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소텐덴(蒼天伝)은 저온 저장하라는 스티커가 말해주듯 신선함을 매끈하게 다듬은 타입이었다. 텐메이가 날것의 생동감이라면 소텐덴은 그걸 부드럽게 정리한 쪽. 목 넘김이 편하고 마무리가 깔끔하다.

 

 

한국에 돌아와 비교해 보니

여기서 인상 깊었던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오사카에서 사케를 마시고 한국에 돌아온 뒤 동네 사케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맛 차이가 너무 났다. 동네 사케는 쓰고 목 넘김이 거칠었는데 SHIKI에서 마신 사케는 부드럽게 넘어가고 향미가 제대로 났다.

 

SHIKI에서 마신 술들이 꽤나 고급이었구나 라는 걸 느꼈다. SHIKI는 사케이대한 기준을 새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사케라는 술을 다시 보게 되는 경험.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바에서 술과 함께 필요한 건 바텐더와의 교감이다. SHIKI에서는 바턴데(사장님)과의 대화가 꽤 즐거웠다. 사장님은 제주도와 서울 방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제주도에는 연락하고 지내는 음식점 사장님까지 있다고. 일본에서 제주도 맛집을 추천받는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런 게 여행의 재미다.

 

술이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 곳도 있지만 사람 때문에 기억나는 곳도 있다. SHIKI는 둘 다였다.

 

 

이용 팁을 현실적으로 정리해 보자

이곳은 좌석이 많지 않다. 바형 테이블이고 붐비는 날엔 예약이나 사전 전화 체크가 필요할 듯하다. 특히 23시 이후 방문이라면 전화 권장이라는 리뷰도 보였다.

 

또 하나. 오사카에는 'Bar Shiki'라는 이름의 칵테일 바도 따로 있어서 헷갈릴 수 있다. 日本酒BAR四季(주소: 히가시신사이바시 2-5-30, 빌딩 2층)로 검색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아참 이곳에는 사케 메뉴판이 없으니 사장님께 내 취향을 소개하자. 그 취향에 가장 어울리는 술을 소개해줄 거다.

 

 


도톤부리 2차로 조용한 한 잔 원하면 여기다

도톤부리가 시끄럽고 화려한 곳이라면 SHIKI는 그 반대편에 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주변 분위기가 다르다. 사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잘 아는 사람도 모두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바텐더의 추천이 그날의 경험을 결정하는 곳이다. 다음에 오사카를 다시 간다면 나는 여기 또 갈 거다. 여기 만큼 사케에 집중하기 좋은 곳이 없는 듯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