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둘째 날 일정이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꽉 차버리는 바람에 오사카에서는 카페를 많이 못 갔다. 오사카 카페 투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딱 세 군데만 들렀다. 하지만 세 군데만 갔는데도 놀랄 포인트가 모두 있었다는 것. 사이폰 커피 맛에 놀라고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서 놀랐으며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으로 또 놀랐다. 오늘은 릴로 커피 킷사부터 멜 커피, 후프 커피까지 세 군데의 오사카 카페를 한 번에 정리해 본다.

1. Lilo Coffee Kissa(릴로 커피 킷사), 늦은 밤에 찾은 레트로 구원자
오사카에 도착한 날 저녁 9시에 갈 수 있는 카페가 생각보다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릴로 커피 킷사였다. 릴로 커피 킷사는 신사이바시·도톤보리 인근, 신사이바시역에서 도보 4분 정도의 위치라 쇼핑 동선에 끼우기 좋다. 번화가 한복판인데도 2층으로 올라가면 꽤나 조용하다.

9시에 도착했더니 직원이 '10시까지인데 괜찮냐'라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커피 한 잔 마시기에 한 시간은 충분하니까. 내부는 레트로한 우드와 주황빛 조명이 섞여서 오래된 일본 다방 같은 느낌이 났다. 사이폰 추출 도구가 한쪽에 놓여 있었다.

릴로 커피 킷사의 재미는 주문 방식에 있다. 원두(종류와 로스팅 정도)를 고른 뒤 추출 도구도 고른다. 그날 준비된 원두는 라이트 로스팅 콜롬비아, 미디엄 로스팅 르완다, 다크 로스팅 태국이었다. 추출 도구는 하리오 V60, 프렌치프레스, 에어로프레스, 사이폰, 에스프레소 머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콜롬비아 라이트와 르완다 미디엄을 사이폰으로 주문했다.

맛은 예상보다 섬세했다. 콜롬비아는 처음엔 온도가 높아서인지 산미나 쓴맛이 크게 튀지 않았다. '어, 생각보다 무난한데?'로 시작했는데 식으면서 산미가 슬쩍 올라오고 혀끝을 감싸는 뉘앙스가 또렷해졌다. 르완다는 더 깔끔했다. 쓴맛이 거의 없고 식을수록 스트로베리 향이 느껴졌다.

늦은 밤에 찾아간 카페였는데 그 시간대의 조용함과 사이폰이 잘 맞았다. 교토와 오사카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든 카페가 릴로였다.
2. Mel Coffee Roasters(멜 커피 로스터스), 1시간 반 웨이팅의 대가
멜 커피 로스터스는 오사카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카페였다. 2016년 오픈한 스페셜티 로스터리로 로스터리 카페다. 핸드드립 퀄리티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다.

가보니 카페는 굉장히 작았다. 내부 좌석이 없는 테이크아웃 중심 로스터리 카페다. 카페 내부는 로스팅 머신이 존재감을 드러낸 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는 작다는 것보다 대기가 길다는 것. 대기팀이 10팀 정도밖에 없길래 '이 정도면 금방이겠네' 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게 실수였다. 대부분이 핸드드립을 마시니까 한 팀당 시간이 길어지고 결과적으로 1시간 반을 기다렸다.

멜 커피는 주문받는 사람이 한 명 전담으로 서서 메뉴판을 보여주며 질문에 성심껏 답한다. 추천도 취향에 맞춰준다. 이 과정이 친절한 만큼 회전율을 늦추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안쪽에서는 추출과 서빙, 로스팅까지 인원이 분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한 명이 더 합류해서 총 네 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우리는 에티오피아를 워시드와 내추럴로 각각 주문했다. 커피 온도가 아주 뜨겁지 않아 바로 마시기 좋았다. 처음부터 찌르는 산미가 아니라 은은한 산미가 혀를 자극했다. 산미가 지나가면 플로럴 한 뉘앙스가 남았다. 내추럴이 워시드보다 바디감이 더 느껴졌다.
맛있었다. 기다리느라 일정이 꼬였는데도 커피맛이 모든 걸 보상했다는 말이 딱이다. 다만 대기팀이 적어도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

3. HOOP Coffee & Share Roasters(후프 커피), 멜 옆에서 찾은 대안이 아니라 동급
멜 커피에서 걸어서 6분 거리에 후프 커피 & 셰어 로스터스가 있다. 문제는 간판이 작다는 것.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친다.
계단을 내려가면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나온다. 흰 벽과 우드 테이블, 한쪽에 큼직한 로스터기 그리고 캠핑용 의자. 이 조합이 묘하게 편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 그랬다.



우리 말고 한국인 한 팀 정도가 있었다. 메뉴는 필터 커피(핸드드립),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테 정도로 단출했다. 이날 원두는 6가지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원두를 250g, 500g, 1kg 단위로 판매하고, 구매하면 다시 패키징 해주는 디테일까지 있었다.

우리는 에티오피아와 과테말라로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에티오피아는 산미가 톡 쏘지 않고 은은하게 비치고 끝맛에 과일향이 감돌면서 입안에서 깔끔하게 정리됐다. 과테말라는 식을수록 맛이 더 좋아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멜 커피에 맛이 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프는 멜 대기 길면 대안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그냥 동급의 좋은 선택지였다.

오사카 카페 투어 결론, 세 군데면 충분했던 이유
릴로 커피 킷사는 레트로한 키사(Kissa 일본식 다방) 감성과 다양한 추출 선택의 재미가 있었다. 특히 사이폰으로 보는 재미까지 더하는 곳이다. 멜 커피 로스터스는 기다림이 길지만 로스터리의 집요함이 컵에 들어가 있었다. 후프 커피는 조용한 지하 공간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오사카에서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이렇게 추천한다. 밤늦게 카페가 필요하면 릴로, 스페셜티 한 방을 경험하고 싶으면 멜, 멜에 사람이 많거나 동선상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싶으면 후프로 묶으면 된다. 이 조합이면 제대로 마셨다는 만족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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