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롤 호텔에서의 하룻밤을 마치고 체크아웃을 했다. 원래는 무주 와인 동굴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런데 리조트 입구에서부터 차량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덕유산 곤돌라를 타려는 사람들. 잠깐 고민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를 위해 아내가 '그럼 호수를 가보자'고 제안했다. 덕유산 리조트 지도에서 보았던 바로 그 설천호(우정호수)를

곤돌라 티켓 판매소 근처에는 코스모스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진사 모드로 돌입. 다른 커플들도 카메라를 들고 저마다 포즈를 잡고 있었다. 이맘때의 무주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인생샷이 된다.

설천호, 아니 우정호수?
표지판에는 설천호 대신 우정호수라고 적혀 있었다. 곤돌라 승강장에서 설천호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낫다. 왜냐면 다시 되돌아올 필요가 없으니까. 주차장은 두 곳 우정연수원 쪽과 그 반대편 공터가 있다. 연수원 쪽은 주차공간이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 한산했다.

산책 시작, 가을빛으로 물든 호수길
설천호는 길이 약 1.1km 한 바퀴 도는 데 20분 남짓 걸린다.
리조트 중심에 자리한 이 호수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자연 풍경 속에 조용히 묻혀 있다. 우정연수원에서 출발하면 처음에는 호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시야를 가리기 때문. 대신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나무들이 가을의 기운을 전한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부드럽게 반짝이고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중간쯤 걸었을 때 맨발 걷기 구간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500m 정도의 구간을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해 둔 길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냥 신발을 신은 채 걸었다. 가을의 흙길은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조금 차다.
탁 트인 포토 스폿, 그리고 둘만의 호수
호수의 절반 정도를 지나면 시야가 확 트인다. 나무가 거의 없어 설천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간 이곳이 바로 포토 스폿이다.
호수 저편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이 지점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1주일쯤 뒤에 왔더라면 짙은 노란빛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날의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내와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물 위로 반사된 하늘빛은 푸르렀다. 그 속엔 덕유산의 고요함이 담겨 있었다.

호수의 끝, 가을의 농도
마지막 구간에는 갈대밭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가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났다. 호수 옆 나무보다 더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그 앞을 지나니 가을 냄새가 진하게 스며들었다.

'이런 데가 있었네!'
설천호의 진짜 매력
설천호의 매력은 화려함보다 조용함이다. 리조트 한가운데 있지만 곤돌라처럼 붐비지 않는다. 오히려 한적해서 마치 호수를 전세 낸 듯한 기분을 준다. 한 바퀴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덕유산 곤돌라를 타는 인파는 많았지만 이 평화로운 산책길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가을의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가볍게 산책을 마친 뒤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좋을 듯했지만 다음을 위해 떠나야 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
설천호는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라고 한다. 봄에는 연둣빛 잎사귀가 물 위로 드리워져 싱그러움을 더하고 여름엔 주변 숲이 짙어 시원한 산책길이 된다. 가을엔 단풍과 갈대, 그리고 노을이 어우러지고 겨울엔 눈 덮인 산과 얼어붙은 호수가 만들어내는 무주의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단다.

설천호 한 바퀴는 길지 않다. 하지만 풍경이 주는 여운은 길게 남았다. 소란스러운 관광지보다는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공간 그게 진짜 휴식 아닐까. 리조트 안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거나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덕유산 리조트에 온다면 설천호는 꼭 한 번 들러야 할 곳이다. 사진을 찍기에도 좋고, 마음을 비우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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