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일 덕분에 가게 된 원주 1박 2일. 여행이라기보단 맛집 순례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로컬이 살아 숨 쉬는 시장 한복판에서 감성이 넘치는 카페에서 그리고 술이 진심인 양조장에서. 그야말로 원주의 현지력을 제대로 체감한 순간들이었다. 먹고 마시고 사는 이야기. 이름하여 식당, 카페, 쇼핑 3부작. 지금 시작해 보자.

1부: 식당 - 자극 대신 진심이 담긴 한 끼
자유시장 지하에서 마주한 로컬의 힘
원주 첫 끼는 똘이 떡볶이와 강릉집. 자유식당 지하 1층 시장 식당가에서 유독 붐비던 두 곳이었다. 똘이 떡볶이는 짠맛과 신맛이 앞서는 묘한 양념이 인상적. 윤기 좔좔 흐르는 떡볶이에 튀김까지 곁들인 떡튀김은 특이하다 싶다가도 계속 들어간다.

이어 들른 강릉집에선 탱글탱글한 수제 순대가 대박. 9천 원에 3인분 수준의 양이라니 혜자 그 자체다. 국밥을 못 먹은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배부르지만 먹는다. 원주 김치만두
시민전통시장으로 이동해 원주 김치 만두를 클리어했다. 김치향은 약하지만 먹을수록 중독되는 찐만두와 튀김만두 위에 짭짤한 양념을 끼얹은 양념만두. 서울 입맛엔 어색하지만 신기하게 자꾸 손이 간다. 전통시장 음식들이 단맛보다 짠맛과 신맛이 강하다는 걸 여기서 다시 체감했다. '아, 이게 원주의 맛이구나!'

명륜 미술관: 막걸리에 감성이 필요한 순간
미술관이 아니라 전통주 전문 주점. 비가 오는 저녁 감성 터지는 날이었다. 백련 막걸리는 은은한 곡물 풍미가 좋았다. 도토리묵은 자극 없이 술맛을 살려준다. 결정타는 메뉴판에도 없던 '살맛나네' 막걸리. 바나나와 사과향이 동시에 퍼져 이름처럼 살맛 난다. 디저트처럼 즐길 수 있는 막걸리라니 감성은 이렇게 마시는 거였다.

미로 속에서 찾은 어머니 손 칼국수
중앙시장 2층. 골목식당에 나온 그곳. 5천 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에 정성 한가득. 닭육수 베이스에 부드럽지만 퍼지지 않은 면발. 자극이 없어 어르신들에게도 인기라고. 팥죽은 별다른 재료 없이도 기교 없는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다. 설탕, 소금으로 나만의 맛 조합이 가능한 건 덤.

막국수로 마무리, 중앙막국수 신림점
12월의 양조장 사장님 추천으로 간 마지막 식당. 40년 내공이 느껴지는 막국수와 전병. 특별한 한 방은 없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기본기 충실한 맛. 겨자, 식초, 설탕을 조합해 나만의 맛으로 먹는 재미도 있다. 고속도로 타기 전 무겁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어 딱 좋다.

2부: 카페 - 뷰든, 맛이든 확실히 하는 곳
리을리을 커피 로스터스: 에스프레소의 본진
혁신도시 안 전원주택 느낌의 동네에 유독 북적이던 한 곳. 리을리을 커피 로스터스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곳은 에스프레소 바의 정석. Berry Much 블렌드는 설탕을 섞어도 안 섞어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파나마 게이샤 필터커피는 추출부터 향까지 완성도 높다. 가격은 조금 있지만 맛은 확실하다. 커피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웨이팅 감수할 가치 충분.

스톤크릭: 절벽이 있는 뷰카페의 반전
보통 뷰카페는 뷰만 있고 커피는 별로인데 여기선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절벽과 계곡을 품은 야외 정원 그리고 내부엔 스페셜티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는 진심이 담겨 있다. 직접 핸드드립하지 않고 자동 드립 머신으로 추출하는 건 살짝 아쉬웠다. 무산소 내추럴 푸어오버는 과일주스 같은 산뜻함이 있었다. 원주에 뷰카페 하나만 추천한다면 바로 여기.

3부: 쇼핑 - 맛있는 술과 추억을 사고 싶다면
12월의 양조장: 술이 맛있는 이유
사장님이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든 전통주. 14도 약주는 바나나 향과 단맛이 강해 위험한 술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기대 안 했던 시음에서 마음이 열리고 사장님 친구분의 입담에 지갑이 열렸다. 결국 2병 사러 갔다가 3병 들고 나옴. 3종 세트 현장 할인은 덤. 막걸리 체험도 가능하니 시간 여유 있다면 더 좋을 듯.

전통시장 쇼핑: 진짜 시장의 매력
오란다 제과의 찹쌀 도넛과 밤만쥬는 푸석함 없이 촉촉. 시장표 도넛의 완성형이다. 첫날 찹쌀 도넛과 밤만쥬를 구매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빵이 촉촉하다. 밤만쥬는 속이 꽉 차있어 이튿날 다시 구매했다.

단양 죽령 고랭지 사과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장님과 높은 당도의 사과 때문에 놀라는 곳. 사장님 추천으로 자칭 18 브릭스라는 2개 1만 원 사과와 무난한 5개에 만원 하는 사과를 구매했다. 18 브릭스 사과는 당도도 높았지만 산도도 높았다. 노지 사과로 사과 겉표면은 매끄럽지 않으니 참고하자.

옷 쇼핑은? 꽃무늬 누빔조끼 5천 원에 득템. 온라인 최저가도 6,900원(배송비 별도)다. 촌스러운 듯 귀엽고 싸고 겨울에 입으면 은근히 따뜻할 듯하다. 이런 게 시장의 묘미 아니겠나.

원주!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이상하게 계속 생각나는 도시다. 딱히 ‘핫플’도 아니고 대단한 파인다이닝도 아니었지만 오래된 떡볶이, 순대, 만두집과 정직한 칼국수 그리고 진심이 담긴 커피와 술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더 좋았던 여행이었다. 다음에 또 온다면 이번엔 순대국밥부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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